너무나 주체적인 장애인 '아이엠 샘'
장애인 가정의 엄청난 희생을 미화한 '말아톤'
kbs 인간극장에서는 목발을 사용하는 여성 미술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방송 속의 장애인의 모습을 모니터링 하는 필자로서 과연 미술전문가에 입문 하려는 장애여성을 제작진이 어떻게 묘사 할 런지 내심 궁금해 하며 지켜봤다. 그러나 5일간 계속되는 방송 내내 보여 지는 모습이라곤 여성장애인의 어머니가 딸을 가르치기 위해 17년 동안 업고서 학교를 데리고 다니며 엄청난 희생을 해왔으며 대학원을 졸업하여 홀로 설 때까지는 앞으로도 상당기간을 고생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이러한 눈물겨운 희생을 묘사하기위해 카메라는 어머니가 딸을 힘겹게 업고 다니는 모습, 집에서는 물론이고 대학원서 수업을 받는 동안에도 옆에서 온갖 수발드는 걸 보여주고 어머니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이 여성장애인은 장애 때문에 미술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증명 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비슷한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가 아무리 심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온갖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인간극장속의 여성장애인은 장애로 인한 아픔과 어머니와 가족들의 희생만을 보여줄 뿐 그 여성이 어떤 이성상을 갖고 있는지, 친구관계는 어떠한지, 미술전문가의 길을 걸으면서 어떤 미술세계를 추구 하려는지 등 장애가 있든 없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방송 내내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간극장 제작진의 관심은 오로지 장애의 아픔, 장애의 불편함, 그로인한 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 이렇게 비장애인들과 다른 점들 외에는 안중에도 안 보이는 것이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는 다큐멘터리인 “인간극장”이 이러할 진데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애인들의 모습이 어떠할 런지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지적장애인 가족은 엄청난 희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2002년도에 개봉한 미국 장애인 영화 '아이엠 샘'과 2005년에 개봉한 한국장애인 영화 '말아톤'은 두 나라에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까지도 대강의 내용 정도는 알만큼 많은 화제를 뿌리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그런 만큼 두 영화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장애인관점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먼저 한국영화 말아톤을 보면 영화감독 류미례씨의 평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결승점에 도달하는 시점이 아니라 초코파이(그것이 상징하는 어머니의 기대)를 초월한 채 자신의 마음으로 달리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 한다는데 있다. 장애극복의 신화가 아니라 한 청년의 독립과 홀로서기의 성찰로 나아가며 말아톤은 그동안 보여줬던 장애인 영화의 공식을 훌쩍 뛰어 넘는다”처럼 기존의 한국 영화 속 장애인들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하지만 류미례씨가 보지 못하는 것은 영화상에서 지적장애인인 초원이는 홀로서기에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초원이를 뒷바라지 하기위해 어머니가 22년 동안 24시간 내내 초원이 매달리느라 살림살이는 엉망이 되 가고 가족들이 해체되기 직전까지 내몰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초원이처럼 사람들과 소통을 못하는 존재는 초원이 외에는 없으며, 초원이는 사회에서 죄를 지어 죄를 씻으려는 범죄자(마라톤 코치)의 봉사의 대상이 된다.
즉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적장애인들 만이 사람들과 소통을 못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라 정상적인 인간들만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본인과 가족의 피눈물 나는 희생을 통해서라도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기는 어렵다
이에 반해 미국영화 아이엠 샘은 지적장애인인 샘이 어린 딸을 키우면 사는 애환을 이용하여 관객들의 눈물이나 짜내려는 단순한 신파극 정도로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적장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인간을 얘기하고 있다.
7살의 지능을 갖고 있는 샘이 해가 가면서 자기보다 지능이 높아져 가는 딸을 키우느라 갖갖이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고 나중에는 국가에서 샘이 아이를 키우기에 지능이 모자라단 이유로 아이를 뺏어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는 우리나라의 장애인영화와 별반 다를 바 없으나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비장애인들도 자식을 기르는데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폭로한다. 샘을 도와주는 여 변호사는 늘 바쁜 업무와 남편과의 불화 때문에 어린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으며, 샘의 정신감정을 하고 있는 의사 역시 자식의 마약중독을 막지 못한 못난 부모이며, 샘의 옆집에 홀로 사는 여성 또한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심한 갈등으로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보여준다. 이를 통해 샘과 같은 지적장애인만이 아이를 키우기에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장애가 없는 사람들 또한 자식을 기르기에는 모자라는 점이 많은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가진 인간 샘, 다양성이 없는 비정상 인간 초원이
이외에도 두 영화 속 장애인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 둘 다 지적장애인(샘은 자폐+정신지체 7살 지능, 초원은 자폐증 7살 지능)이지만 샘은 자신 또래의 친구들과 영화 내내 어울리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초원이는 엄마와 마라톤 코치 외에는 어울리는 존재가 전혀 없는 외톨이다. 샘과 초원이는 둘 다 20살이 넘은 성인이지만 샘이 애도 낳고 기르면서 남성 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초원이는 성인 남성으로서의 모습이 전혀 없고 20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보호 대상이다.
샘이 커피전문점, 식당, 피자집 등에서 일하며 비록 단순 작업이지만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반해, 초원이는 후반부에 공장에 다니는 것으로 나오긴 하지만 일하는 모습은 외면하고 취미인 마라톤이 초원이 삶의 전부인 냥 그린다.
종합하면 미국감독은 지적장애인 샘은 여느 비장애인들과 마찬 가지로 일도 열심히 하며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고 자식을 낳아 사랑으로 기르며 갖갖이 희노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반면, 한국감독은 지적장애인 초원이는 사람들과 소통을 못하는 존재는 초원이 뿐이라 친구가 있을 수 없으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엄청난 희생을 딛고서라도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고 어딘가 고쳐야 할 비정상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적장애인들이 사회와 소통을 못하는 존재라고요? 그럼 사회가 지적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기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영화 예술인들은 과연 둘 중에 어느 면을 조명해야 할까요.
출처 : 에이블뉴스<칼럼니스트 심승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