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원하는 장애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자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수년전 식당 종업원들이 화장실을 사용한 후 손을 씻지 않고 나와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몰래 카메라에 찍혀 보도된 후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후 주의회가 법을 만들어 요식업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이 화장실 사용 후 손을 씻지 않는 것은 불법행위이다. 식당체인점 등 대형식당의 화장실에 가보면 이를 고지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지난 가을의 일이다. 하루는 내가 관리하는 부서의 수퍼바이저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말인즉 두명의 여직원이 그에게 면담을 요청한 후 여자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손을 씻지 않고 나오는 동료직원들이 있는데 이를 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민감한 사안이라 입장이 난처했다. 지역사무소장과 의논한 끝에 “손을 씻자”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를 세면대 앞 거울에 붙이기로 했다. 스티커를 붙이고 난 후 문제는 해결되었다. 해당 여직원들이 손을 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칫 나와 남을 다른 잣대로 평가하곤 한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고 나온 사람과 악수를 한다거나 그런 이들이 만든 음식을 알고서도 먹겠다는 이는 드물 것이다.
비장애인들은 왜 장애인들이 시설을 떠나 독립해서 살기를 원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장애인을 다른 잣대로 보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지방으로 연수를 떠나 남들과 한 방에서 자고 화장실과 욕실을 함께 쓰며 하루 세끼 배식을 받아 먹는 일은 재미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을 10년, 20년 동안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답답하고 절망적인가.
자고플 때 자고, 먹고플 때 먹고, 때로는 친구들을 불러 나만의 메뉴로 안주를 만들어 소주잔을 기울이고, 울고 싶으면 울고,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은 아마도 모든 이들의 바람일 것이다.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장애인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남아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런지. 연령이나 장애도 등을 고려치 않고 모든 부류의 장애인을 하나로 보는 사회의 인식이 가장 큰 장벽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에게 시설이 불필요한가 하면 그건 아니다. 장애도에 따라 본인의 기호에 따라 시설에 사는 것이 더 안전하고 편안한 장애인들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국가가 책임져 주어야 할 일이다. 이는 국민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부모 형제들은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다하며 살아온 성실한 국민들이다. 대부분의 중도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처럼) 어려서부터 장애를 입어 더러 이런 책임을 다 못한 장애인들도 기회가 주어지면 세금을 내고 사회에 공헌하며 살고 싶어 한다.
지역사회는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참고로 미국의 장애인들에게는 연방정부가 매달 생활비를 지급한다. 장애인은 이를 가지고 혼자 독립해서 살기도 하고 더러는 지역사회의 작은 그룹홈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가족을 이루어 살기도 한다.)
출처 : 에이블뉴스<칼럼니스트 고동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