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수십만 개씩 사라지는 '고용 빙하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기침체의 골이 예상보다 깊고, 침체 기간도 길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내수 침체와 수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는 서비스업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전 업종의 고용 시장이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0년 전 환란 당시와는 달리 이번에는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인해 청년층이 3~5년간 취업을 못하면서 세대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일자리 50만개 이상 줄어든다"
국내 예측기관들이 올해 일자리 수(취업자 수)가 지난해보다 최대 50만 개 이상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경기하강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올해 성장 전망을 -2%로 하향조정하고 일자리가 20만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보다 더 악화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잡셰어링을 비롯한 정부의 고용 촉진정책이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를 줄이는데 기여하겠지만 경기침체라는 큰 파도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변양규 연구위원은 올해 연간 성장률을 -3~-4%로 전제하고 일자리는 연간 최대 50만 개 이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하반기보다는 상반기 고용사정이 더욱 안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상황에 따라서는 일자리 감소폭이 연평균 50만 개를 웃돌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성장률은 -2%, 일자리는 최대 30만 개가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올해 성장률이 실제로 -3∼-4%로 악화된다면 일자리 감소는 40만개 이상에 이를 수도 있게 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포인트 늘면 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는 약 9만 4천 개가 늘어난다. 반대로 성장률이 -4%로 내려가면 일자리는 40만 개가 감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연구원의 신용상 거시경제실장은 "한 분기 정도는 버티겠지만 마이너스 성장이 길어지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일자리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고용감소는 특정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서비스업은 노동집약적이어서 내수가 위축되면 고용이 타격을 받으며 제조업 고용은 수출이 안되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거의 모든 고용분야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은 소득과 직결되고 소득은 경제의 기본"이라면서 "소득이 흔들리면 소비가 줄어들면서 내수가 타격을 받고 가계부실로 인해 금융권도 부실해진다"고 밝혔다.
◇ "내년이 더 걱정된다"
최대 5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도 이는 10년전 환란 당시 보다는 심각하지 않은 것이다. 1998년에는 127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고용정보원의 신종각 인력수급전망센터장은 "우리나라 고용은 다른 나라보다 법적 보호를 많이 받고 있는 데다 정부가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 있어 과거 외환위기 때와 같은 대규모 실업사태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전 환란 당시에는 기업들이 일시에 큰 충격을 받고 무너졌으나 현재는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현재의 실업사태가 IMF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지 않은 이유로 꼽혔다.
그러나 문제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내년 이후 무너지는 기업들이 속출하게 되면 실업문제가 이때부터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연구원의 황수경 동향분석실장은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부실한 기업들이 계속 버티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한계기업들이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올해보다 내년의 고용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침체의 장기화에 대한 전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내 예측기관들은 경기가 회복되는 예상 시점을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으로 미루는 등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작년 11월과 12월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경기 하강이 조금 더 깊고, 길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청년실업 심각해진다
이런 경기침체 장기화는 청년층 취업을 상당히 오랫동안 가로막기 때문에 세대문제를 일으킨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동연구원의 황 실장은 "외환위기 때는 경기가 1~2년 후에 곧바로 회복됐기 때문에 청년층이 곧바로 취업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청년들이 3~5년 동안 취업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청년들은 실업급여나 고용보험의 혜택도 못받기 때문에 더욱 타격을 크게 입는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최근 고용여건의 변화와 청년실업 해소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청년이 1년간 실업을 겪으면 평생 2억8천만원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20대 청년이 1년간 미취업 상태에 머물 경우 평균적으로 연간 3천700만원의 임금 손실이 발생하지만 나중에 취업할 때 임금하락을 가져오는 데다 다른 기회비용까지 상실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따라서 올해 초 25∼29세의 실업자가 1만8천명이라고 할 때 이들중 10%가 실업의 장기효과(실업기간 1년시)에 노출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5조6천억원의 장기적 소득손실이 발생하게 된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연구원은 또 청년 실업이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성장 잠재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청년실업이 인적자본의 형성을 저해한다"고 말하고 "특히 일하는 과정에서 얻는 학습기회를 상실하는 것은 장기적인 손실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출처 :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