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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멀쩡한 회사를 헐값에 넘겼다네요..."2006-04-14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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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회사를 헐값에 넘겼다네요 실직당한 내 남편 죽게 만들어놓고"

#. 그 날 새벽

"집 근처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니까 남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잠꼬대를 하고 있었어요. 다가가서 깨우려 했는데 갑자기 '어, 어, 어' 하는 비명을 지르더니 온 몸을 떠는 거예요. 곧바로 119 구급차를 부르고 아들이 달려나와 남편을 흔들어 깨웠죠.


죽음을 예견이라도 했는지 어린 막내아들을 끌어안으며 '할 말이 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남편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곧바로 119구조대의 도움으로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겼습니다. 당직 의사가 여러 차례 심폐소생술을 시도해 보았지만 이미 눈을 감은 뒤였습니다."


#. 그로부터 7시간 전


"남편이 숨지기 전날 밤 외출을 한 뒤 집에 들어온 건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남편은 실직 후 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여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그 날은 오랜만에 외환은행 입사 동기 2명을 만나고 돌아왔어요.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덜컥 울음을 터뜨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편이) '인맥이 없어서 살아남지 못했다, 오로지 일밖에 몰랐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더라, 새로 들어온 이들(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은 나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딴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하며 저를 붙잡고 30분 이상 통곡을 했어요."


#. 그 날 이후


"투기자본이고 국부유출이고, 그런 건 잘 모릅니다. 만일 그 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못했더라면 그래서 남편이 은행을 그만두는 일이 없었더라면, 애들 아빠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남편처럼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환은행 헐값매각에 대한 의혹이 꼭 밝혀져야 합니다."


"론스타는 나같은 사람 안중에도 없다며 통곡"


27년간 외환은행에 근무했던 고 이상정 전 신촌지점장은 희망퇴직 후 1달 만인 지난 2005년 1월 그렇게 갑작스럽게 숨졌다. 사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


13일 오후 <오마이뉴스> 취재진을 만난 그의 부인 김현숙(50)씨는 1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막혀온다고 했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논란이 최근 '불법매각' 의혹으로 번져가고 있다. 외환은행을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넘긴 결정적 근거가 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씨는 더 속이 상한다. 이는 김씨가 남편의 사망에 대해 외환은행 상층부, 매각을 승인한 금융당국 관계자 등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숨지기 전 이상정 전 지점장은 신촌지점장으로 근무하다 갑작스럽게 특수영업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특수영업팀을 신설한 것은 2004년 6월이다. 특수영업팀은 카드모집, 아파트 담보대출, 연체회수 독촉을 주업무로 하는 조직으로 당시 론스타는 희망퇴직 미신청자들을 중심으로 특수영업팀에 발령을 냈다.


당연히 관련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발령을 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희망퇴직 미신청자들로 채워진 것이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특수영업직은 퇴직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임시조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희망퇴직 안 하면 퇴직금도 없이 정리해고될 수 있다"


2004년 9월을 시작으로 그 해 11월까지 특수영업팀으로 발령을 받은 외환은행 직원은 모두 250명이다. 이 가운데 47명은 결국 이 기간에 은행 측이 진행한 2차 희망퇴직에 신청해 은행을 떠났다. 이 전 지점장은 이 47명에 속했다.


"저는 어찌 됐든 끝까지 버텨보라고 했죠. 하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어요.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는 겁니다. 은행 측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희망퇴직 권고 공문을 보내 남편을 압박했어요. 심지어는 이번에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나중에 정리해고를 당할 경우엔 그나마 퇴직금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협박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특수영업팀 발령 자체가 이 전 지점장에겐 큰 충격이었다. 사실상 정리해고 대상으로 분류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 지점장은 2004년 6월 대기발령을 받은 이후 5개월여를 버텨오다 은행 측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실직 이후 이 전 지점장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27년간 몸담아 온 조직에서 버림을 받았다는 상실감에 적잖이 시달렸을 터다. 새로 다른 일을 알아보려 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실직하고 처음 일주일은 아무 생각도 없이 지냈어요. 이젠 더 이상 은행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던 거겠죠. 그러면서도 늘 은행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극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이 전 지점장이 세상을 떠나고 1년 가량 지난 지금, 김씨는 매일 새로 드러나는 외환은행 매각 의혹을 접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특히 멀쩡한 은행을 '부실은행'으로 만들어 론스타에 매각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만일 이같은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외환은행 헐값매각과 남편의 죽음이 무관하지 않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좀 더 사태를 지켜본 뒤 주변의 친지들과 함께 외환은행과 론스타 등을 상대로 소송까지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실직만 아니었다면... 의혹이 사실이면 소송도 하겠다"


김씨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이 전 지점장을 퇴직으로 이끈 론스타, 외환은행 고위 관계자 등 누구도 남편의 사망에 대해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7년간 온 몸을 다 바쳐 봉사했지만 퇴직하면 바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적어도 남편의 사망 원인이 실직 스트레스에 따른 것이었다면 저희들을 찾아와 한번쯤 사과를 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요."


김씨는 최근의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보도를 접하면서, 결국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각 당시 은행 상층부의 잇속 챙기기에 남편이 희생당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남편의 경우처럼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 감독 당국과 은행 상층부 간의 유착이 꼭 밝혀져야 한다고 김씨는 주장한다.


"어떻게 멀쩡한 회사를 나쁘다고 꾸며서 그렇게 헐값으로 넘길 수가 있나요? 만일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실직으로 고통 받는 이도 없을 거고, 저희 남편처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이도 없었을 텐데요."

출처: 오마이뉴스 김연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