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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노무/산재상담

제목노동없는 민주주의의 가혹함2008-08-01
작성자이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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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아래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성취는 어디까지일까?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이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경험했던 정부 형태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것”이라는 윈스턴 처칠의 비관적 관점을 받아들여야 할까?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웠을 때는 민주화만 되면 모든 게 잘될 거라 생각했다.
- 민주정부 아래서 ‘빈익빈’ 심화 -

하지만 실제 현실은 달랐다. 정권 교체와 특권 타파를 내세웠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실망은 컸다. 한국 사회를 심각한 불평등과 빈곤화로 이끈 신자유주의 정책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국민 전체가 벌어들인 소득에서 노동에 분배되는 몫이 줄어든 것도 이 시기였다. 재벌체제가 안정되고 삼성이 그 아래 4대 재벌을 합친 것만큼 커진 것도 이때였다.

한마디로 민주정부 아래에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다. 그리고 한국 사회 최고 부자가 대통령이 되고 절제 없는 절망적 통치자로 군림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운영되고 실천될 때 그 이념적 가치와 이상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나라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룩한 성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민주주의는 중요한 집단이익이 배제됨 없이 폭넓게 대표되는 조건 위에서만 사회를 공동체적으로 통합하는 정치체제로서 작동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민주주의는 정치 엘리트들 개개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시민의 요구가 여러 정치세력에 의해 경쟁적으로 수용되는 메커니즘을 통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실천되는 것이라면, 그 발전의 수준은 노동의 시민권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얼마나 넓게 수용되느냐에 달려 있다. 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인 노동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대표되는가에 따라, 민주주의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유럽의 여러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의 영향력이 클수록 투표율은 높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정도는 작고, 빈곤계층의 비율도 낮다. 성장과 경쟁의 논리에 의해 사회가 일방적으로 내몰리는 정도도 작다. 폭력의 정도나 범죄율이 낮으며, 문화적으로도 풍요롭다.

- 노동 대변黨 부재가 위기의 핵심 -

노동이 생산체제, 시민사회, 정당체계 등의 차원에서 충분한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조직화되지 않는 한,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난한 약자들에게 가혹한 체제를 낳는다. 노동은 멸시받고 그에 비례해 하층에 대한 심리적 배제는 심화된다.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공동체적 관념이 약화되고,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토양 역시 척박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당연히 투표율은 낮아지고 범죄와 폭력도 늘어난다.

비정규직이 850만명을 넘어서는 일이 허용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는 제대로 된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 한국 민주주의가 갖는 위기의 핵심을 말해주는 것도 없다. 노동을 폭넓게 대표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정당’이 출현하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자기 파괴적 상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한 소수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로 퇴락하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지, 탈출구 없는 오늘의 한국 정치는 분명 비극이다.

<박상훈|도서출판 후마니타스대표>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