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업시대- 수퍼 주부 사장들
【1】스파게티 전문점 운영 엄희숙씨
또 오고싶게 만든 소스, 인테리어… 월 9000만원 매출…
“가게 홍보는 단골들이 알아서 해주던데요^^”
창업시장에서 주부들이 신주류(主流)로 떠오르고 있다. 창업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家長)의 실직이 늘면서 여성 창업자 수가 늘어났다가 2003년 이후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주부 창업 증가세의 결정적인 원인은 사회구조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연령이 다가오면서 ‘2막 인생’ 대비 차원에서 남편보다 주부들이 먼저 창업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특징은 내집 마련, 자녀 교육비 해결, 자아 실현 등 동기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전 주부 창업이라고 하면 생계유지형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많은 차이가 있다.
▲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엄희숙 사장. 엄 사장은“그 지역에서 최고의 가게가 된다는 생각으로 일하라”고 말했다.
“외동딸이 고1이 되자, 의견차가 커지면서 자주 싸우게 되더라고요. 아이에게 집착하며 살기보단 돈도 벌고 나 자신만의 일거리를 찾고 싶었어요.”
부천역 인근에서 스파게티 전문점 솔레미오를 운영하는 주부 엄희숙(47)씨는 월평균 9000만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른바 ‘수퍼 주부 사장님’이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스파게티 소스와 서울 강남지역 점포에 비해 절반 정도인 가격, 프랑스풍의 인테리어 등이 합쳐 지역 명물이 됐다. 건물 2~4층에 걸친 엄 사장 가게의 테이블은 모두 28개. 하루에 200팀 정도 들어온다고 하니 테이블당 일곱 번 정도 손님을 받는 셈이다. 주부로서 성공적으로 창업한 사례로 소문이 나자 성공 노하우를 배우기 위한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주부에서 사장님으로 변신
엄 사장이 주부생활을 접고 사업에 뛰어든 때는 2000년 초다. 사업을 하기로 맘을 먹고 친구 소개를 받아 직업학교에 2억원을 투자했다가, 몽땅 날렸다. “공무원인 남편과 17년간 애지중지 모은 돈이었어요. 어떡하든 만회할 생각으로 여동생에게 1억7000만원을 빌려 지금 이 가게를 차렸습니다.”
처음 해본 사업이었지만 엄 사장은 억척스럽게 특징 있는 점포로 만들어 나갔다. 서울 청담동 이탈리아 음식점과 호텔 등 30여 군데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맛을 보고 소스를 개발했다. 모자라는 부분은 호텔 주방장 출신 요리사를 두 달간 초빙해 보완했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이 스파게티용 고추장 소스다. 엄 사장은 “토마토·크림·칠리·미트 소스 등도 있지만 전국 어디서도 우리 집 고추장 소스 맛을 못 따라올 것”이라고 자랑했다. 전체 매출 중 고추장 소스를 넣은 해물스파게티 비중이 35%나 된다.
인테리어를 프랑스 프로방스풍으로 꾸미기 위해 이름난 카페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 다녔다고 했다. 엄 사장은 “단골 고객들이 인터넷에서 블로그를 만들어 예쁘고 맛있는 집으로 소개해 주는 덕에 홍보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서울 강남의 웬만한 스파게티 전문점에 비해 절반 정도의 가격인 데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소스를 개발, 젊은층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했다.
재미있는 것은 장사가 너무 잘돼 가격을 일부러 올렸다는 것.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몰리는 바람에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자 4000원대 스파게티를 메뉴별로 500~1000원씩 올렸다. 그래도 손님들이 계단에 줄을 설 정도로 몰리자 6개월 만에 또 올렸다. 이번엔 1000원씩이었다. 현재 주 메뉴는 6000원대다.
지난 2004년 엄 사장은 본사로부터 ‘솔레미오’ 브랜드마저 인수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본사를 인수한 것이다. 엄 사장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창업 희망자들이 늘어나면서 가맹사업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사업을 하더라도 단기간 승부는 위험
엄 사장은 “주부 사장으로서 유리했던 점은 가게를 예쁘게 꾸미고, 모나지 않게 직원들을 관리한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요즘 주부 창업이 관심받는 이유에 대해 “요즘은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주방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소스나 재료를 공급해 주는 곳이 많이 생겨, 주부처럼 비전문가도 서비스 마인드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는 사업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사업을 하더라도 단기간에 승부하려 하지 말고 ‘어디에 가면 그 집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내다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