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차(茶) 개발한 남양유업 중앙연구소
2006년 매출 1100억원, 월 최고 판매량 3000만 병(2006년 8월); 출시 1년 만에 1억 병(180ml 기준) 판매 돌파. 출시한 지 2년도 안돼 차 음료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잡은 남양유업 ‘17차(茶)’의 화려한 성적표다. 2007년 계획도 야심차다. 지난해보다 30%나 많은 1500억원을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남양유업이 차 음료 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2003년과 비교하면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한 것만큼이나 큰 변화인 셈이다. 당시만 해도 차 음료 시장의 전체 규모는 800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음료 시장의 규모가 3조7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차 음료 시장은 그 규모가 미약한 비주류 시장이었던 셈이다.
생소한 복합차로 한국인의 입맛에 도전
음료 시장은 탄산음료와 과일주스 시장의 절대 강자인 롯데칠성, 코카콜라, 해태음료 등 ‘빅3’의 위세가 높다. 후발주자인 남양유업으로선 빅3이 주목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기획을 담당한 음료기획팀 이승철 과장은 일본의 음료 시장에 주목했다. 일본에서 차 음료는 음료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마침 한국 음료 시장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주요 소비자인 20대 젊은층의 기호가 ‘저칼로리, 무탄산음료’로 이동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음료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콜라 같은 탄산음료의 판매가 수년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 과장은 “음료 시장에도 건강과 패션을 강조하는 웰빙문화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개발 배경을 밝혔다. 음료 시장의 새로운 흐름은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남양유업의 창업 정신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음료기획팀은 차 음료 중에서도 복합차에 주목했다. 분명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차를 마시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젊은층들은 이웃의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한 가지 차를 선택했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향과 쌉싸래한 맛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복합차는 여러 종류의 차 재료를 배합해 특정한 차의 맛과 향은 없는 대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과장은 “복합차는 차 문화가 앞선 일본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시장이었지만 한국에서는 특성을 잘 살리기만 하면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섰다”고 설명했다.
개발은 충남 아산에 위치한 남양유업 중앙연구소에서 맡았다. 유제품 시장의 선두주자로 42년 노하우를 가진 중앙연구소는 유제품은 물론이고 동충하초 음료 같은 기능성 음료에 대한 개발 노하우도 갖춘 상태였다.
타깃은 20대 초반의 여대생. ‘건강과 미용, 패션에 모두 민감한 이 계층을 만족시킬 새로운 개념의 차 음료 개발’이 개발팀에 떨어진 과제였다. 이들을 매혹시킬 맛과 기능을 찾기 위해 연구소의 전등은 연일 밤을 밝히기 시작했다. 음료는 ‘맛’이라는,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음료 기획팀은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대강의 소비자 기호를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쓴맛은 덜하고 미용과 건강에 좋은 음료’가 소비자가 찾는 새로운 제품이었다.
연구개발팀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통적으로 즐겨 찾는 차 재료를 대상으로 배합 작업에 착수했다. 녹차, 치커리, 상황버섯, 영지버섯, 차가버섯, 홍화씨 등이 주요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이들 재료가 몸에는 좋지만 여러 성분을 혼합하다 보니 작은 함량 차이에도 맛이 천차만별로 변했다. 건강이라는 기능과 미각이라는 기호를 모두 만족시키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은 요원해 보였다.
시장에 없는 맛을 찾는 일은 연구소만이 아니라 시장에서도 실시됐다. 연구소에서 배합한 음료를 가지고 상품 기획팀과 영업팀은 전국의 대학 캠퍼스를 찾아 나섰다. ‘떫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좋다’는 반응이 나오자 연구소와 기획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맛의 배합을 맞춘 음료를 가지고 다시 시음 테스트에 돌입한 남양유업 측은 그러나 또다시 뜻 밖의 벽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보리차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다시 차 맛을 조금 강조해 보았더니 이번엔 ‘시중의 차 음료와 다르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연구소와 개발팀 모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 개발 기간만 이미 1년이 넘게 소요됐다. 시음 테스트만 300회, 참가한 대상자만 해도 2500명에 달했다. 개발부터 신제품 출시까지 짧게는 2~3개월 정도면 충분한 음료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긴 산고가 아닐 수 없었다.
17차의 황금의 맛 비율을 찾아낸 연구팀. 정밀한 분유개발 노하우가 있어 가능했다.
실무 진행팀의 초조함을 누그러뜨린 건 최고 경영진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심기 일전한 개발팀은 수많은 차들을 조합한 결과 녹차, 산수유, 메밀, 현미, 옥수수, 둥글레차, 결명자, 구기자, 율무, 귤피, 영지, 치커리, 차가, 홍화씨 등 17가지 재료를 배합한 17차를 탄생시켰다. 부드럽고 구수한 맛과 깔끔한 뒷맛을 가진 17차 특유의 ‘맛’을 찾아낸 것이다. 최경철 홍보팀장은 “각 원료의 0.1 마이크로 리터까지 다루는 분유 연구 노하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 이라고 덧붙였다.
맛이 결정되자 음료를 담을 용기에 대한 디자인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차 제품임을 강조하자면 시각적으로 녹색이어야 했다. 그런데 차 빛깔은 갈색에 가까웠다.
차 색깔은 녹색이라는 통념에 순응해 플라스틱 용기를 녹색으로 처리하느냐, 있는 그대로의 음료를 그대로 보여줄 것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결론은 ‘정직하게 음료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쪽으로 모아졌다. 대신에 부드러운 녹색의 포장지를 통해 갈색의 이질감을 줄이기로 했다. 녹색의 용기보다 부드러운 갈색이 흰색을 즐겨 입는 여대생들의 의상과도 잘 부합된다는 점도 투명 용기를 사용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800억원 시장을 2500억원으로 키우다
주력 판매할 용기의 사이즈는 340㎖로 결정됐다. 250㎖는 들고 다니며 마시기엔 너무 작고 500㎖는 너무 크다는 테스트 집단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여대생의 평균 손 사이즈까지 감안한 것이다.
과연 시장은 새로운 개념의 음료를 어떻게 받아 들일 것 인가? 시장 출시를 앞둔 기획팀과 연구팀의 고민은 연구 단계와는 비길 수 없이 무거웠다. 음료시장에서 남양유업은 후발주자라는 약점이 있는 상황에서 개발팀은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모델로는 막대한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최고 몸값을 지닌 전지현씨를 과감하게 캐스팅했다. 건강과 미(美)를 동시에 전하는 모델이면서 깨끗한 이미지도 충족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대적인 마케팅과 함께 시작된 17차의 출시 첫 달 성적은 100만 병. 통상 400만 병이 팔려야 히트라고 보는 음료 시장에서 100만 병 판매는 들인 노력에 비해 미흡한 성과였다. 하지만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한 5월부터 판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처 물류와 배송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재고가 바닥나면서 생산라인이 24시간 풀 가동 체제에 돌입했지만 주문 물량을 소화하지 못했다. 무더웠던 2005년 여름 동안 17차 생산라인이 24시간 내내 생산해낸 물량은 물류창고에 쌓이기도 전에 시중에 팔려나갔다.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17차’의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차 음료 시장은 2500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17차 한 제품의 연간 매출이 11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7차가 견인한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지만 현재 17차는 월 평균 1500만 병이 팔리고 있다. 더욱이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층이 점점 넓어져 일반 가정에서의 대형 용기(1.5ℓ) 제품 구매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남양유업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는 우려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또 이미 경쟁사들도 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다투어 신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고 있는 것은 남양 측의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더하고 있다.
출처 : 한경비즈니스<오성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