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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luxury] ‘장인의 손’ 고집 테스토니의 성공철학 “한눈팔지 말라”2007-08-28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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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늘리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명품 수제화
인종별 발 모양 맞춰 제작, 세계인의 신발로

▲ 2007 F/W 아메데오 테스토니 라인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한 켤레에 수십만원에서 1백만원을 호가하는 이탈리아 럭셔리 구두 ‘테스토니(a.testoni)’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0년이었다. 한데 이 구두를 처음 알린 사람은 구두 뒷굽이 낡아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었다고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해외순방길에 다른 국가 정상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장인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했다는 테스토니 제품을 접하게 됐다고 한다. 얼마 후 상공부 주관으로 ‘세계우수상품 시작품 경연대회’가 열렸다. “외국의 우수한 제품을 따라잡기 위해 장인에게 외국 제품과 비슷하게 만들어보도록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1회, 2회 연속으로 우승한 사람은 볼로냐 공법대로 테스토니 신발을 본떠서 만든 조창남씨였다. 한 달 동안 이탈리아 신발 공방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게 된 조씨는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신발을 제작하는 전담 장인으로도 일했다. 박 전 대통령이 테스토니 구두를 신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그는 ‘이탈리아 최고급 구두’라고 하면 테스토니를 꼽았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3년 “외국의 우수한 기술을 응용해 한국인에 맞는 신발을 연구하라”고 했다. 1983년 아프리카 순방 당시, 이순자 여사가 명동의 고급 수제화를 신었다 발뒤꿈치가 벗겨져 고생한 게 계기였다. 당시 한국인의 발 모양 연구를 맡게 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한 전산개발 담당자는 테스토니의 볼로냐 공법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 터틀백과 악어가죽의 여성 구두 (photo 테스토니 코리아) 테스토니는 국내에 1993년 처음 상륙하기 전부터 신발과 관련해 ‘연구대상 1호’로 통해온 것이다. 테스토니의 ‘볼로냐 공법’은 공기를 넣은 가죽을 신발 밑창에 삽입해 발가락과 그 주위가 신발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 이 공법은 테스토니만의 독점이 아니라 볼로냐 지역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쌓아온 기술이었다. 볼로냐는 신발을 제작하는 가죽공의 길드가 12세기부터 명성을 떨쳤고, 1600년 들어 150여개 공방이 상권을 형성했던 도시다. 하지만 아메데오 테스토니(테스토니 창립자)라는 장인이 1929년 창업한 이후 장갑처럼 발에 꼭 맞으면서 신발 앞 부분엔 탄력성을 주고 뒷부분은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해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테스토니 같은 남성용 럭셔리 브랜드가 팔아야 할 ‘꿈’과 ‘욕망’은 여성용 럭셔리 브랜드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의 제품을 쓰면 권력과 명예,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신화’다. 할리우드 스타를 내세운 광고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테스토니도 ‘성공한 남성의 신발’이란 점을 은근히 강조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테너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을 위한 구두를 별도로 제작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테스토니는 유명한 사람의 상갓집이나 고급 골프장 클럽라운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두 브랜드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한 정치인이 2년 전 식사 자리에서 “이 구두를 신었더니 일이 잘 풀리더라”라는 말을 했단다. 그런 뒤 갑자기 테스토니 매장엔 내로라하는 정치인이나 그의 가족, 대리인이 찾아와서 몇 켤레씩 사갔다고 한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퉈 거대한 자본과 손을 잡고 제품군을 늘리는 요즘, 테스토니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돈 많은 창업자 가족을 만난 덕분(?)에 외부 자본과 손잡고 시장을 키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다. 아메데오 테스토니에 이은 2대 회장 카를로 피니(창업자의 사위)는 요즘도 구두나 가방에 쓰일 가죽을 구입하는 장소에 약속없이 나타나곤 한다. 볼로냐 지역의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고 대형 보험회사의 대주주인 그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매출 신장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다른 구두 브랜드가 제품 종류를 확장하고 다양한 사업을 벌여 규모를 키울 때도 그는 “우리 구두 공방처럼 30~40년째 이곳에서 일한 장인이 많은 곳은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가졌다. 신발 디자인은 물론 한 켤레당 200번에 가깝다는 공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 송아지와 염소 가죽으로 만든 남성 구두. (photo 테스토니 코리아) 다른 회사와 손을 잡고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건 테스토니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옹고집 브랜드’도 한때 외도를 한 적이 있다. 남성용 브랜드로서 입지가 흔들리자 여성 시장을 기웃거린 것이다. 1960년대 이미 소피아 로렌을 위한 악어 가죽 구두를 만들어 홍보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2000년부터 강화한 여성 라인이 전체 매출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남성 패션 시장이 성숙해가는 지금, 제품군을 우후죽순 늘리기보다는 남성 쪽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테스토니 코리아의 홍윤모 사장은 “제품군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거대 럭셔리 그룹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며 “구두는 물론 가방, 벨트 같은 남성용 제품의 ‘기본’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만원에서 100만원 전후하는 고급 구두를 신는 남성들이 늘어가는 세상의 변화 덕분에 희망적이라고 한다. 한 해 150개 모델을 내놓는 남성용 구두만큼은 못되어도 여성용 구두나 가방도 계속 제작된다. 다만 유행에 맞춰 내놓기보다는 ‘여성성을 살린 테스토니’에 충실한 제품 제작에만 주력할 것이란다.

2007 F/W 남성 컬렉션을 보면 서류 가방과 손가방, 구두 등이 클래식한 중후함보다는 깔끔하고 혁신적이란 느낌을 풍긴다. 여성용으로는 현대적이면서 도도한 섹시미를 가미한 슈즈와 미니멀한 감각에 바로크 디테일을 첨가한 가방을 내놓았다.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외곬수로 생존해온 테스토니가 유독 강한 대목은 따로 있다. 해외 진출과 글로벌전략이다. 1970년대 초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1980년대 남들보다 일찍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그리곤 유럽의 3배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인종별로 다른 발 모양에 맞춰 지역별로 다르게 제작하는 것은 테스토니의 힘이다. 아시아인의 발 모양은 전체 길이가 짧고 볼이 넓은 반면, 북미 쪽 사람들은 전체 길이가 길고 볼이 좁아 가느다란 모양이라고 한다. 유럽인은 그 중간 정도라고 한다. 테스토니 코리아의 홍윤모 사장은 “요즘 일본에선 젊은 남성 중 40%가 유럽인의 발 모양과 닮아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며 “이런 점들이 시장에 곧바로 반영된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62개 매장을 운영 중인 테스토니는 바야흐로 남성 패션의 시대가 도래한 걸 반긴다. 기본에 충실해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재도약하는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

출처 : 위클리조선<황성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