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42)씨는 몇 년 전 즉석 조형물 사업이 유망하다는 말을 듣고 창업을 했다. 얼굴이나 입술.손 모양을 본으로 떠 액세서리를 만들어 주는 사업이었다. 경기도의 한 대학가에 5평 규모의 점포를 여느라 점포비 등 모두 8000만원 가까이 투자했다. 당시에는 단기간에 전국에서 수백 개 점포가 생길 정도로 붐이었다. 처음엔 호기심에 손님이 몰렸지만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8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양모(46)씨는 서울 목동에서 장사가 한창 잘 되는 칼국수 전문점을 접고 찜닭 전문점으로 말을 갈아탔다. 손칼국수 장사는 잘 됐지만 일이 힘들었다. 양씨는 ´찜닭 전문점이 닭 한 마리에 2만5000원을 받을 수 있어 수익성도 좋고 공급받은 찜닭을 살짝 쪄내면 되기 때문에 주방 작업이 단순하다´는 소문을 듣고 업종을 바꿨다. 프랜차이즈에 가입해 개설자금만 6500만원을 썼다. 그러나 사업은 쉽지 않았다. 아이템이 너무 간단하다는 게 단점이었다. 너도 나도 이 업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업체가 난립하면서 양씨는 결국 1년 만에 손을 들고 나왔다. 그는 "업종을 바꿀 때 찜닭 유행이 끝물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고 했다.
유망업종이라는 말을 듣고 점포를 열었지만 해당 아이템이 ´반짝 유행´에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점포형 창업은 사업 초기에 보유자금 대부분을 투자하기 때문에 반짝 유행업종에 뛰어들면 투자비 회수조차 어려울 수 있다. 1~2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찜닭.탕수육과 저가 참치회 등이 대표적인 반짝 업종이었다. 저가 참치회 전문점의 경우 한창 때는 40~50개가 넘는 체인 본사들이 가맹점을 모집했지만 지금은 거품이 많이 빠졌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컵이나 쿠션 등의 생활용품에 새겨주는 디지털 포토아트전문점도 붐을 탈 때는 전국적으로 60~70개가 넘는 군소 체인 본사가 난립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체인 본사들이 정리됐고 유동인구가 많은 관광지 등 일부 특수 입지에만 점포가 남아있을 뿐이다.
?반짝 업종, 왜 양산되나=붕어빵처럼 똑같은 점포를 대량으로 복제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이 발달하면서 반짝 업종이 더 많아졌다. ´뜨는 업종´이라는 소문만 나면 체인 본사들은 앞다퉈 뛰어든다. 이 바람에 초기에 창업한 사업자들이 투자비를 미처 회수하기도 전에 공급과잉 상태가 빚어지기 일쑤다. 실제로 PC방의 경우 1998년 당시 6000여 개에 불과했는데 2~3년 만에 전국에 2만~3만여 개로 늘어났다. 죽카페도 처음에는 1~2개 체인 본사가 사업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체인 본사만 수십여 개에 달한다. 그래도 PC방이나 죽카페는 수요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경쟁력만 있으면 장기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문제는 찜닭처럼 전국적으로 삽시간에 확산됐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70~80% 이상이 문을 닫는 경우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일부 부실한 체인 본사 중에는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2~3년 만에 사업을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유행업종만 좇아 말을 갈아타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짝 업종 가려내는 법=반짝 유행을 탔던 업종 상당수는 ▶누구나 하기 쉽고▶인테리어가 깔끔하며▶여성 창업자가 좋아하는 업종들이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부업 개념으로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이 뛰어드는 업종일수록 반짝 유행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업종에는 체인 본사들도 많이 뛰어들고, 수익성이 높거나 시간을 적게 들이고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광고한다. 손쉽고 겉보기에 좋은 업종만 선호하는 창업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반짝 업종 생존법=저가 참치회 전문점은 가짜 참치 파동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아직도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영업을 계속하는 점포도 꽤 있다. 찜닭 전문점 중에서도 입지가 좋고, 새로운 메뉴를 보강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는 곳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경희 소장은 "창업자들은 한번 창업을 하면 최소한 5년 이상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매출이 떨어지고 동종 업소들이 여기저기 문을 닫는다고 덩달아 사업을 포기해서는 안되며 사업성에 확신이 들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지역 상권에서 자기 입지를 다지는 프로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체인 본사들도 가맹점을 개설해 단기 수익을 챙기는 데 급급해서는 안된다.
이 소장은 "체인 본사도 10~20년 이상을 내다보고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브랜드 가치를 키워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돈 되는 사업이라면 한 업체가 이것저것 손 대는 다(多)브랜드 전략을 펴는 것도 그리 바람직스럽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의 우수한 체인 본사들은 사업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점포 출점수를 줄이거나 다른 사업자 모델을 모방하지 않고 경쟁자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대신 독창적.혁신적인 사업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출처 : 중앙일보 서경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