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삼괴고등학교에는 14개 창업 동아리가 있다. 200여명의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각종 수공예품을 만들고 팔면서 경험있는 창업 인력으로 세상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일본 상업고교와 교류하며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지역 특산물과 학교에서 만든 물품을 일본에 ‘수출’할 계획이다. 해가 갈수록 실업계 교육이 설 자리를 잃고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삼괴고가 선택한 비장의 필살기, 비즈쿨을 소개한다.
학생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사업자등록증도 있다고요
화성시 우정읍 삼괴고등학교에는 14명의 시이오(CEO)가 있다. 한방 방향제를 만드는 ㈜웰빙향기의 박근영(2학년) 시이오, 고객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를 제작해주는 ㈜버터플라이의 김규성(3학년) 시이오,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프로이시(EC)의 이명근(1학년) 시이오 등이다. 이들은 각자 삼괴고 안에 있는 14개 창업 동아리를 이끌면서 아이템 기획과 물품 생산을 총괄하고, 판로 개척을 위해 서로 협력한다. 특히 ㈜프로이시 이명근군은 삼괴고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로 얼마전 사업자등록증을 받아, 대외적으로도 엄연한 ‘사장님’이 됐다.
염색·방향제부터 소금·쌀까지… 학교 울타리 넘어 주민도 주목
시장조사·판매 위해 뛰다보면 교육 활력·창업 의욕도 쑥쑥
삼괴고가 이처럼 학교 안에 창업 동아리를 만들고 각 동아리별로 전문 기업의 모양새를 갖추는데 힘쓰게 된 것은 2년 전, 중소기업청이 실업계 고교생 창업 지원을 위해 마련한 ‘비즈쿨’ 대상 학교로 선정되면서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첫 해에 900만원, 중소기업청에서 3년 동안 매년 80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된 삼괴고는 학생 수가 줄면서 갈수록 힘을 잃는 실업계 교육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비즈쿨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팔을 걷어붙인 건 학생들 사이에서 ‘비즈쿨 삼종 세트’로 불리는 이난희, 우제건, 이덕관 교사다.
“삼괴고는 수원 시내에서 1시간 거리, 화성군 안에서도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학교입니다. 남들의 이목을 끌만한 물건을 팔려면 저잣거리에 나가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시장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하는데, 그것부터 쉽지가 않았어요.”
이난희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수원 시내와 서울 동대문 상가 등지를 돌아다니며 수요가 있으나 아직 공급이 부족한 상품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우제건 교사는 방학을 이용해 ‘천연염색’을 배우고, 아이들과 더불어 손 끝에 노란 치잣물이 배도록 연습을 거듭했다. 그 결과 천연염색, 한방 방향제, 머리핀, 도자기와 청바지 리폼, 비즈 공예, 양모 펠트 등 다양한 품목의 물품들이 아이들 손 끝에서 만들어졌고, 삼괴고 쇼핑몰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게 됐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 상설 전시장을 꾸미고, 지역 행사나 교육청 주최 행사, 인근 기업 등을 찾아다니며 물품을 전시하고 주문을 받았다. 현장에 천연염색 체험 코너를 마련하는 등 고객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마케팅 방식을 생각해 낸 것도 아이들이었다. 천연염색 동아리 ㈜바람빛 소속인 2학년 송영규군은 “수업이 끝나면 물품을 제작하고 아이템 기획 회의나 행사 준비 등을 하느라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곤 했는데, 그러면서 사람들이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고 가을 분위기에 맞는 색상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어느정도 감각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이처럼 감을 익히는 동안, 교사들은 ‘국제교류’의 발판을 마련했다. 주한일본대사관 문을 두드려 현재 일본 정부의 창업 지원을 받고 있는 상업고와 자매결연을 맺고, 양쪽 학교 교사들이 서로 방문하는 행사를 가진 것이다. 지난해 6월, 일본 미아자키현 노베오카상업고교 교사들이 화성을 찾았다. 삼괴고를 주축으로 우정읍주민자치센터와 인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 힘을 보태, 삼괴고 비즈쿨의 현황과 미래를 한 눈에 보여주는 ‘마을 축제’를 열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삼괴고 비즈쿨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 ‘지역’에 뿌리내릴 고교생 창업 프로그램으로 학부모와 주민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난희 교사는 “일본 교사들은 학교 안에서 자체적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 수 있는 한국의 여건에 놀랐고, 우리는 시장 한복판에 상설 매장을 만들어 학생들이 직접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돕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놀랐다”고 전했다. 삼괴고와 노베오카상업고는 올 여름 방학 기간에 40여명씩 교환 학생을 파견해 서로의 장점을 배우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 화상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상대 학교의 주력 상품을 사 시장에 내놓는 ‘무역 실습’도 해 볼 참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김규성군은 2년 동안의 비즈쿨 시이오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할 예정이다. 김군은 “방학 때 전국 비즈쿨 학생들과 캠프하면서 정보 교환도 하고 창업에 필요한 경영 강좌를 들은 뒤 경영학과에 진학할 결심을 굳혔다”면서 “비즈쿨 활동을 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비정기적인 행사에 참여해 한 회에 70~8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수익금을 독거노인 돕기에 쓰는 형식으로 운영해 왔는데, 상업고인만큼 물품 생산보다는 판매와 영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삼괴고는 2007년을 지난해 연말 본격적으로 문을 연 ‘삼괴몰(samgoe-mall.com)’을 중심으로 ‘판매’에 주력하는 한 해로 잡고 있다. 삼괴몰에서는 학교에서 생산된 물품뿐 아니라 천일염과 쌀, 열무 등 지역 특산물도 팔게 된다. 학교 교과과정에 ‘창업’ 과목이 신설되는 것도 올해부터다. 이난희 교사는 “방과후 동아리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 창업 교과를 신설했다”면서 “수업시간에 창업과 관련해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삼괴몰을 운영하면서 좀 더 본격적인 영업, 마케팅, 회계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 올해 삼괴고 비즈쿨 사업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비즈쿨은 동아리 운영금 지원하고 마케팅·영업 실무교육도…
» 비즈쿨
‘비즈니스’(Business)와 ‘스쿨’(School)의 합성어로, 중소기업청이 마련한 실업계 고교생 창업교육 프로그램이다. 창업 동아리 운영을 원하는 전국 실업계 고교의 신청을 받아 각 시·도교육청과 중소기업청이 대상 학교를 선정한 뒤 3년 동안 일정한 금액의 창업 지원금(창업 동아리 운영 지원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2년 15개 학교로 출발해 2004년 전국 80개 학교로 지원 대상을 늘렸다. 지난해에는 교육청이 지정한 62개 학교와 중소기업청이 지정한 21개 학교를 포함해 모두 83개 학교가 비즈쿨을 운영했다. 현재 250여개 창업 동아리에서 3만2428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원 기간이 3년이기 때문에 2004년에 비즈쿨 대상 학교로 선정된 실업계고는 올해까지 지원을 받게 된다. 중소기업청은 비즈쿨 지원 기간이 마감된 학교 가운데 우수 학교를 선정해 지속적으로 동아리 운영 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비즈쿨 창업 아이템은 비즈, 리본, 한지, 종이, 자수 등 공예 제품과 천연 비누, 천연 화장품, 천연 염색 등 ‘웰빙’ 바람을 타고 각광받는 각종 천연 제품이 많고, 학교 특성에 따라 자동차 경정비, 원예, 문화콘텐츠 제작, 식품 조리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학생들은 재량 활동 시간이나 방과후 동아리 활동으로 비즈쿨에 참여하면서, 비즈쿨 운영기관인 한국컨설팅협회에서 마련한 각종 창업 강좌와 방학을 이용한 창업 캠프에 참여해 사업계획서 작성, 마케팅·영업 실무 교육을 받는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2007 희망 비즈쿨 페스티벌’을 열고, 전국 비즈쿨 운영학교들의 사례 공개, 우수 학교 수상, 학생 창업 아이템 경진 대회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자세한 정보는 비즈쿨 누리집(bizcoo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한겨레신문< 이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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