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의사인 양모씨는 직업이 세 개다. 평일 낮에는 의사로 일하지만 저녁에는 와인바의 사장이고, 주말에는 서울 강남에 있는 커피전문점의 사장이다. 와인바와 커피전문점의 경우 별도의 경영인을 두고 있지만 양씨는 저녁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매장을 돌본다.
양씨는 “부동산의 경우 규제 논란이 있고 주식시장은 불안정해 창업을 재테크 수단으로 택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소형 병·의원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점도 양씨가 창업이라는 ‘외도’를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중견기업 대표 김모씨는 최근 아내에게 남성 미용실을 차려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김씨지만 전문경영인인 그로서는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 모르기 때문에 재테크 차원에서 아내에게 가게를 차려준 것이다.
그 동안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나 점포 창업은 생계형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투자 목적으로 창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창업 시장이 ‘생계형’과 ‘투자형’으로 양분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형 창업의 경우 ‘투잡스형’이 많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아메리칸 핫도그 안병례 이사는 “상담자 중 3분의 1 정도가 아내와 함께 상담하러 오는 직장인”이라며 “대부분 투잡스 차원에서 소규모 점포 운영을 생각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주5일 근무제가 확대되면서 최소한 주말에는 매장에 신경을 쓸 수 있다는 점도 투잡스형 창업이 늘어난 주요 원인이다.
직장인뿐 아니라 수입이 많은 전문직 종사자 또한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전문직의 경우 피부관리·다이어트 센터 등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매장을 여는 사례가 많다. 자녀에게 직접 재산을 물려주기 보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차려주는 경우도 늘고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여유 자금이 있는 고령자가 젊고 의욕 있는 젊은이와 공동으로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이 있으면서 재테크 수단으로 창업을 하는 경우 매장 관리가 문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문 경영인을 두거나 체인 본사에 점포 운영을 맡기는 ‘위탁관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위탁관리는 직접 운영을 하는 것보다 투자 수익률은 떨어지지만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는데다 일반 금융투자보다는 수익성이 좋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한 투자자는 “업종과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매출액의 8~15%까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금융권 수익률보다는 훨씬 좋다”고 말했다. 또한 나중에 자신이 직접 운영을 하더라도 일단 매출을 안정시키고 전문경영인에게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많은 사람들이 위탁 관리를 선호하는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직장인들 가운데에는 용돈도 벌면서 창업 경험을 쌓기 위해 동료들이 돈을 모아 공동으로 위탁 경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건물에 직접 매장을 열고 창업을 하거나 프랜차이즈 본사로부터 직영점을 유치하는 건물주가 늘고 있다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계속된 불황으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공실률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건물주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창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입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사업 아이템을 잘 고를 수 있는데다 임대료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매출은 떨어지는데 임대료 상승 압박에 시달리는 점포의 경우 한 점포 내에 두 개 업종을 만드는 ‘브랜드 인 브랜드’ 창업 방식도 일반화되고 있다. 한 점주가 두 업종을 함께 운영하기도 하지만 기존 점주가 투자를 받아 수익금을 분배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앞으로도 투자형 창업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투자형 창업이 늘어나는 이유는 점포 경영이 투명해지고 선진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