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급진적 페미니즘은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여성에게 강요된 가사노동은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노예화된 여성 인권의 상징이다.
그런데 최근 여성 스스로 선택했다면 전업주부로서의 삶도 페미니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것을 ‘실용적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주장과 더불어 미국에서 전업주부를 선택하는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미국의 전업주부가 13%나 늘어났다고 한다. 정글 같은 경쟁에서 싸워 이기는 것만이 여성의 자유를 획득하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알게 된 슈퍼우먼들의 우아한 귀환이라고나 할까.
미국보다 각 가정의 경제적 여유가 풍족하지 못한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징후가 본격화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가사노동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전업주부의 역할 역시 가정을 유지하는 단순노동자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가사노동이 잘 해야 본전이라는(청소로 대표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정의 가치를 키우는 매니지먼트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부는(남성이라도 상관없다) 가정을 관리하는 매니저이고, 그 대상은 가정의 모든 것이다. 가전제품, 가구, 커튼, 조명기구, 벽지 등은 하나 하나 작품의 소재이고, 컬러나 공간 배치는 예술가의 감각이 된다. 매니저는 이렇게 집을 하나의 표현공간으로 재구성하고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디자이너다.
이렇듯 가사노동의 가치와 역할이 달라지고, 주체들의 가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이 성장할 여지가 커지고 있다. 바로 가정의 매니저들에게 집을 관리하기 위한 소재를 구매하고, 꾸미고, 고치는 일체의 행위를 지원하는 ‘홈 매니지먼트(Home Management)’ 산업의 성장이다.
홈 매니지먼트 산업의 성장은 대기업은 물론이고 가정용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다양한 직종에 새로운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커튼을 새로 사는 일에서부터 못 하나 박고 복잡한 전선줄을 정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유지·보수를 대행해 줄 믿을 만한 전문업체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홈 시어터 시스템과 미니 스포츠센터, 와인바, 홈 스파 등 집을 단순한 휴식공간을 넘어서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바꾸려는 소비자 니즈도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정기적으로 대청소에서부터 하자보수까지 전문성이 필요한 모든 가사노동을 일괄 처리해주는 홈매니지먼트 프랜차이즈업이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
변소가 화장실이 되어가면서 공동화장실용 그림시장이 8000억원대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단순 가사노동이 홈 매니지먼트가 될 때 이 시장은 얼마나 커질 것인가.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출처 : 파이낸셜뉴스 |